티스토리 뷰

미술사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Guernica

미술 큐레이터 2024. 11. 18. 21:25

 

 

아티스트 파블로 피카소
제작연도 1937
기법 캔버스에 유채물감
크기 349×776㎝
소장처 에스파냐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게르니카>를 그린 것은 에스파냐 파시스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나치가 에스파냐 북부의 바스크 지방에 퍼붓는 융단 폭격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은, 전쟁의 잔학과 참상에 대한 보편적 상징을 표현한다. <게르니카>의 위대함은 서사적 요소와 사실적 요소의 적절한 혼합에 있다. 피카소는 입체주의 양식을 채택하는 한편, 황소 미노타우로스와 고통으로 울부짖는 여인과 같이 이전 작품에 도입했던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다. 신문기사를 오려 낸 듯한 모습 역시 작품의 특징을 부각시킨다.

<게르니카>에는 상당한 서사적 상징주의가 담겨 있는데, 우선 육체에서 떨어져 나온, 공포서린 눈은 폭탄, 혹은 희망과 자유에 대한 상징을 함축한다. 한편, 울부짖는 여인을 짓밟고 있는 말에 대해, 학자들은 이것이 프랑코, 히틀러,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들이 극단에 몰렸을 때의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도상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는 캔버스를 무채색으로 표현하고자 결정했고, 이로 인해 <게르니카>는 추상화된 형태와 신화적 상징주의, 시사적 증거의 면모를 두루 갖추게 되었다.

피카소의 생애 동안, <게르니카>는 미국 및 유럽 전역을 전전해야 했는데, 그것은 에스파냐가 다시 공화국 체제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이 그림을 에스파냐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피카소의 주장 때문이었다. 프랑코의 반복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게르니카>가 뉴욕에서 다시 조국 에스파냐로 돌아온 것은, 피카소와 프랑코 모두가 숨진 뒤인 1981년의 일이다.